| 비리 오명 쓴 미술시장 앞길 ‘막막’
국내 미술계는 암담한 전망 속에 2013년을 맞았다. 지난 20년간 미뤄온 ‘미술품 양도소득세’가 1월 1일부로 시행됐기 때문. 미술품 양도소득세란 6천만 원 이상의 미술품을 되팔 시 차익의 20%를 세금으로 부과하는 제도다. 침체된 미술시장을 더욱 얼어붙게 만들 것이라는 예측과 함께 미술계에서는 강력하게 반발했으나 결국 국내 도입이 추진됐다.
시행 초기인지라 화랑가는 아직 어리둥절한 분위기다.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기준을 잘 모르는 개인 컬렉터들도 상당수다. 강남의 한 화랑 대표는 “뉴스를 통해 양도소득세 부과 소식을 접하고 어떤 작품에 세금을 징수하느냐는 컬렉터들의 문의가 잦다”면서 “법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미술시장에 직접적인 타격은 없을지 몰라도 고가의 작품을 판매하면 거래내역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것 같더라”라고 말했다.
상반기 미술시장은 전반적으로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했다. 국내 최대 규모 미술 장터인 ‘화랑미술제’에서는 570여 점의 작품이 총 30억 8천만 원에 판매됐다. 올봄 홍콩 크리스티에서 낙찰된 중국작가 산위의 작품 한 점 가격인 65억 원의 절반도 안 되는 금액이다. 연이은 불황 속에 참가 부스비를 지불하지 못해 화랑미술제에 얼굴도 내밀지 못한 화랑들도 있었다. 이번 화랑미술제 참여 화랑은 지난해보다 10개가 줄었다.
미술계 내부에서는 사정이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대중들의 시선은 정반대였다. 서미갤러리가 CJ그룹에 1400억 원어치의 미술품을 판매하며 비자금 조성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서미갤러리 홍송원 대표는 고가의 미술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가격을 부풀리거나 거래 내역을 누락하는 수법으로 자금을 세탁했다는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억’ 소리 나는 금액에 미술품은 부유층의 전유물이며 비리의 온상이라는 인식만 강해졌다. 시장 침체를 근거로 양도소득세 도입을 반대해온 미술계의 주장이 설득력을 잃게 된 셈이다.
논란을 의식한 듯 한국화랑협회를 비롯한 미술 단체들은 지난 4월 4일 “서미갤러리의 재벌 커넥션이 일반적인 화랑들과는 무관하다”며 성명을 발표하고 나섰다. 성명에서 미술 단체들은 “특정 화랑의 그릇된 영업방식이 미술계 전반에서 일어나는 사태처럼 비춰지는 것이 유감스럽다”며 “현재 화랑협회에 소속돼 있는 화랑들 중에는 협회비조차 납부하지 못하는 화랑이 많으며 휴업 및 폐업도 늘어나고 있다”고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그럼에도 미술계에 대한 대중들의 시선이 곱지 못한데다 양도소득세 부과 등 악재가 겹치며 당분간은 침체 국면이 이어질 전망이다.
세계비엔날레협회 국내에… 위상 높아진 한국미술
상반기 국내 미술시장 지표는 암담했지만 국제무대에서 한국미술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소식도 있었다. 세계비엔날레협회가 한국을 거점으로 활동하게 된 것이다.
2012년 10월 창설을 결정한 세계비엔날레협회는 전 세계 150개 비엔날레가 모인 국제기구다. 1895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첫 비엔날레가 개최된 이래 국가들 간 비엔날레 국제기구가 생긴 것은 이번이 처음. 세계비엔날레협회는 지난 3월 창립준비위원회를 열어 이용우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를 초대회장으로 선출했다. 비엔날레의 본 고장이라 할 수 있는 유럽 대표들을 물리치고 후발주자인 아시아 광주에서 장(長)을 배출한 것이다.
광주비엔날레의 시작은 1995년. 제1회 베니스비엔날레가 개최된 지 꼭 100년째 되는 해였다. 아시아에서 비엔날레를 창설한 것은 광주가 최초였다. 지난 20년간 꾸준히 성장한 광주비엔날레는 명실상부 아시아 대표 격 비엔날레로 자리매김했다. 이용우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가 세계비엔날레 회장으로 선출된 것은 광주비엔날레의 국제적 입지가 커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 3일에는 세계비엔날레협회 사무국 도시가 광주로 확정됐다. 세계비엔날레협회는 차기 회장을 선출하는 2016년까지 광주를 근거지로 업무를 수행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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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해조 작가의 옻칠 작품을 살펴보는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 관계자의 모습 (제공=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
전통미술 분야에서는 한국공예의 선전이 두드러졌다. 지난 4월 이탈리아 밀라노 디자인전시관에 진출한 한국공예 작품은 현지 관계자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전통공예 중에서도 현대적 미감을 가진 작품들만 엄선한 전시가 세계인의 마음을 두드린 것. “전통과 혁신 사이에서 완벽한 조화”(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멘디니), “그냥 모던한 게 아니라 ‘슈퍼 모던’하다. 현대의 첨단 디자이너가 제작했다고 해도 믿을 것”(디자인 평론가 크리스티나 모로치), “디자인 전시에 첨단기기를 가져올 줄 알았는데 전통 작품을 골랐다. 전통문화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는 것”(디자이너 마리오 벨리니)이라는 평을 받았다.
가시적인 성과도 있었다. 영국 공예청이 주관하는 공예페어 ‘콜렉트’에 출품된 정해조의 옻칠작품은 지난 5월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이 소장 구입했다. 세계 최대 공예미술관인 영국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V&A Museum)도 정해순 작가의 사발 세트와 장연순 작가의 공예 작품을 구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한국 공예 작품을 밀라노에 소개한 손혜원 예술감독은 “평균 연령 60세 이상의 장인들의 공예작품을 선별했기에 최고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좋은 결과를 얻게 되어 기쁘다”고 했다.
반면 이달 1일 막을 올린 베니스 비엔날레 본 전시에 한국 작가들이 이름을 올리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꼽힌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는 2010년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았던 이탈리아 출신 기획자 마시밀리아노 지오니가 지휘봉을 잡았다. 제8회 광주비엔날레 ‘만인보’를 성공적으로 이끈 마시밀리아노 지오니는 당시의 경력을 발판 삼아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에 선임됐다. 이번 비엔날레 본 전시는 광주비엔날레의 연장선인 ‘백과사전식 궁전’을 주제로 기획됐음에도 150명의 참여 작가 중 한국인은 없었다. 본 전시와 특별전을 통틀어 2013 베니스비엔날레에 참여한 한국인은 특별전 초대작가인 서정민 씨가 유일했다.
‘미술 올림픽’이라 불리는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은 어땠을까.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김승덕 큐레이터를 한국관 커미셔너로 선임하고 국제무대에서 활약해온 김수자 씨를 대표작가로 내세웠다. 김수자 작가는 한국관 전체를 하나의 보따리로 규정하고 벽면을 반투명 필름으로 쌌다. 전시장은 미술 작품 대신 미리 설치해둔 작가의 숨소리로 채워졌다. 평가는 엇갈린다. 치열한 미술 올림픽 현장에서 차분하게 명상할 수 있는 자리였다는 호평이 있는 반면 다른 국가관들에 비해 주목을 끌만한 요소가 부족한데다 전시장에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어야 하는 점이 불편으로 다가왔다는 냉소적인 반응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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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 전시 기자회견에 참석한 팀 버튼 감독 (우) 서울시립미술관 <팀 버튼> 전시 작품 ⓒ 유니온프레스 전성규 기자 |
블록버스터 대전, 팀 버튼만 웃었다
상반기에 가장 흥행한 전시는 단연 <팀 버튼>展이었다. 할리우드 인기 영화감독 팀 버튼의 회화 및 조각 작품을 선보인 이 전시에는 46만 명의 관람객이 찾았다.
<팀 버튼>展(12.12.12~13.04.14)은 현대카드의 문화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현대카드는 2009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첫 선을 보인 이 전시를 한국에서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LA, 파리, 토론토를 순회한 적은 있지만 아시아에서 팀 버튼 전시가 열린 것은 한국이 최초였다. 전시 기자회견에는 팀 버튼 감독과 뉴욕현대미술관 큐레이터들이 참석했다. 팀 버튼 감독이 한국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 때문에 미술 관계자뿐 아니라 영화 관계자들에게도 팀 버튼 전시는 초유의 관심사였다.
전시 장소는 서울시립미술관. ‘영화감독의 미술전시’는 수많은 관객들을 전시장으로 끌어들였다. 평소 미술관에 가본 적이 없던 이들도 입소문을 듣고 전시장으로 모여들었다. 겨울방학을 맞아 학생 관람객도 많았다. 사람이 몰리자 시립미술관 측은 관객 수 제한을 뒀다. 전시장에 일정한 수 이상의 관객이 몰리지 않도록 뒤늦게 도착한 관객들에게는 대기표를 주고 기다리도록 했다. 대기 관객들이 누적되면서 주말에는 미술관 바깥까지 수십 미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평균 1시간, 길면 2시간까지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팀 버튼>展의 흥행은 전시 콘텐츠 다양화 측면에서 고무적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그간 블록버스터 전시는 고흐, 피카소, 샤갈 등 유명 근현대 화가들의 작품전이나 해외 유수 미술관의 작품을 대여해오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런 측면에서 영화감독의 작품전을 흥행시킨 <팀 버튼>展은 블록버스터 전시가 다각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라는 해석도 나온다.
상반기에 <팀 버튼>展과 양대 산맥을 이뤘던 전시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반고흐 in 파리>展(12.11.08~13.03.24). 고흐가 파리에 머무르던 시기의 작품을 소개한 이 전시에는 40만 명의 관객이 다녀갔다. 2007년 열린 <불멸의 화가-반 고흐>展에 이은 두 번째 반 고흐 전시로 당시 기록한 81만 6천명과 비교하면 다소 적은 수치다. 2007년부터 이 시리즈를 진행 중인 한국일보 측은 마지막 3부 전시에서 반 고흐 사망 직전까지의 대표작들을 소개할 계획이다.
이밖에 <바티칸 박물관전 - 르네상스의 천재화가들>(12.12.08~13.03.31)도 바티칸 박물관의 소장품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전시로 주목을 끌었다. 특히 르네상스의 3대 거장이라 불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작품을 모두 대여해 오며 전시 보험가액만 1800억 원에 달했다. 4개월 남짓 진행된 이 전시의 집객 수는 22만 명. 적은 수는 아니나 팀 버튼전이나 반 고흐전과 비교했을 때 흥행을 끌만한 요소가 다소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2013년 상반기에는 대규모 국가 교류전도 활발히 진행됐다. 일본, 중국, 대만 등 아시아 지역부터 미국, 체코까지 다양했다. 교류전은 해당 국가의 미술을 총체적으로 선보이는 자리인 만큼 국가별 대표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상반기에 열린 국가교류전으로는 서울대미술관의 <리:퀘스트(Re:Quest)-1970년대 이후의 일본 현대미술>展(일본), 국립중앙박물관의 <미국미술 300년, 아트 어크로스 아메리카(Art Across America)>展(미국), 아르코미술관의 <@What: 신중국미술>展(중국), 덕수궁미술관의 <프라하의 추억과 낭만: 체코프라하국립미술관 소장품>展(체코), 서울시립미술관의 <롤링! 비주얼 아트 인 타이완>展(대만) 등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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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전국 어린이 미술대회 <나는 화가다> 시상식 [1]
